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프 란다우 (문단 편집) === 어린시절 === 1908년 1월 22일 카스피해에 있는 [[바쿠]]에서 유대-독일계 러시아인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쿠의 유전에서 일하는 공학자였고, 어머니는 내과의사였다. 나중에 회상하기를 그가 과학자로 그리고 교육자로 성장하는데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1961년 봄 모스코바 물리 공학 연구소에서의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그는 자신이 영재가 아니었다고 했지만, 어릴 때부터 수학에 천재성을 보였고, 13세에 미적분을 마스터했다. 12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김나지움에 들어간 1년만에 3년과정을 건너뛰어 학교를 졸업하는 비범함을 보인다. 외국어도 능해서 독일어와 프랑스어[* 어릴 때 유대인 학교에 다녔는데, 이 러시아의 유대인 학교는 주로 독일어나 [[이디시어]]로 가르쳤기 때문에 당연히 독일어에 능했을 것이다 프랑스어는 혁명전 러시아 상류층들의 상용어였다. 부모가 상류층이었으므로 당연히 란다우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어릴때부터 매우 능했다고 하며 영어는 훗날 유럽에 체재하며 배웠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그가 대학에 입학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리다고 판단하여, 란다우는 1년 간 Baku Economic Technikum[* 김나지움 정도 되는 듯.]에 다니다가, 14세인 1922년 바쿠 대학에 입학하게 되며, 이곳에서 물리뿐 아니라 화학과 수학에 대해서도 공부한다.[* 물리-수학 학부와 화학 학부를 복수전공했다. 나중에 화학 학부는 전공을 포기하지만, 생애 전반에 걸쳐서 화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도 한다.(ex: 열역학의 란다우 퍼텐셜 등)] 1924년 16살에 란다우의 재능을 파악한 교육당국의 방침에 따라 소련 최명문대학의 하나인 레닌그라드 대학(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으로 전학하였다. 1910년대 빈에 있는 볼프강 파울리가 그랬던 것과 같이 란다우도 일반상대론에 깊이 매료되었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에르빈 슈뢰딩거]]에 의한 양자역학의 글을 읽고 대단한 감명을 받게 된다. 그중 특히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일반 상대론에서 공간-시간의 곡률과 양자역학에서의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1927년 19살의 나이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 과정을 위해서 레닌그라드 물리공학 연구소에서 공부하게 된다. 이곳은 1년 전(1926년)에 그가 시간제 학생으로 공부했던 곳이고, 이때 이원자분자에서의 스펙트럼의 강도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고, 이어 1927년 밀도 행렬을 이용한 시스템의 양자 상태를 처음으로 기술했다고 한다. '''이때가 아직 20세가 안되었을 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